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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비타민~♡/♡ 좋은心 좋은氣

행복비타민~삶은 생각하는 대로 살아진다~!

by 윈도아인~♡ 2013. 2. 4.

행복비타민~삶은 생각하는 대로 살아진다~!

 

 

 


절에서는~!

 

'참회하라' , '발원하라' , '기도하라' 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 말의 핵심은 마음을 내려놓는데 있어요.
그런데 놓으라고 해서 모든 걸 깡그리 다 놓아버리면 안 됩니다.
무념무상(無念無想)이란 잘못된 생각을 놓아 망상이 없는 상태에 든 것이지,

좋은 생각마저 모조리 비워버리라는 뜻은 아니에요.
참선할 때도 모든 잡념을 버리지만 오직 하나, 화두만큼은 끝까지 붙들지 않습니까?
그렇듯 하나의 올바른 생각을 놓지 않고 참구하는 것이 삼매(三昧)이지,

아무 생각 없이 멍청하게 앉아 있는 것을 삼매라고 말하지 않아요.

 

우리가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삶의 모든 것이 결정됩니다.
저는 우스갯 소리로 우리가 태어날 때 정신없이 태어나는 것은 죽을 때 정신없이

죽었기 때문이라고 말해요.
이 말은 '늘 깨어있으라' 는 말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인데,
깨어있다는 것은 올바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말하자면 죽기 전에 바른 생각을 가지고 죽으면,
다음 세상에 태어날 때
올곧은 생각을 그대로 가지고 태어난다는 거예요.
그러니 지금 현재의 일념이 가장 중요합니다.


<성공의 법칙> 의 저자 맥스웰 몰츠는 이런 말을 했어요.
"인간의 뇌는 미사일의 유도 장치와 같아서 자신의 목표를 정해주면

그 목표를 향해 자동으로 유도해 나간다."
어떤 생각을 머릿속에 품고 있으면 그 생각대로 삶이 전개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인간은 생각하는 대로 산다고 얘기하는 거예요.

 

정신없이 살면 정신없이 살아지는 겁니다.
살아지는 것이지 주체적으로 사는 것이 아니예요.
올곧은 생각을 지켜내고 잘못된 욕심, 집착, 번민을 비워내는 게 중요합니다.
우리가 기도를 하고 참선을 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에요.
기도는 '뭐 해주세요' 하며 바라는 게 아니라, 구하고 채우는 것입니다.
바른 생각, 원력, 신심, 지혜를 구하고 채우는 작업이에요.

 

반면에 참선은 잘못된 생각을 버리고 비우는 작업입니다.
마음을 비우고 하나의 생각을 유지해 나가는 게 간화선의 기본이에요.
바른 생각과 원력을 잘 지키려면 나머지 것들은 덜어내고 비워야 합니다.


특히 모든 병과 괴로움의 원인이 되는 집착을 버릴 수 있어야 해요.
일전에 법정 스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들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모든 것이 내 마음대로 되길 바라지만

이 세상에서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엇인가를 주거나, 버리거나, 양보하거나, 비우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는다.
버리고 비우는 일은 결코 소극적인 삶이 아니라 지혜로운 삶의 선택이다.
버리고 비우지 않고는 새것이 들어설 수 없다.

공간이나 여백은 그저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과 여백이 본질과 실상을 떠받쳐주고 있다."

 

채움의 전제조건이 비우기라는 말씀이지요.
우리 안에 가득 차 있는 분별, 망상, 시비, 등을 비워야 새로운 깨우침이 들어올 수있는 거예요.

재밌는 건 누군가 있어 우리 안에 온갖 미혹과 삿됨을 채워놓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내가 나를 묶어놓고 있는 것이지요.
아무도 여러분을 불편하게 한 적이 없습니다.
스스로 마음속에 어떤 하나를 집어놓고, 그것에 엮어 스스로 불편해하고 있는 거예요.
저는 늘 이런 얘기를 합니다.
"고정된 관념을 버려라."
만약 내 안에 조금이라도 고정관념이 있다면,

모든 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판단하는데
그 잣대를 사용할 수 밖에 없어요.


진짜 불자는 부처님이라는 고정된 틀마저도 벗어날 수 있어야 합니다.
오직 한 분만 부처님으로 보면 다른 분들을 부처님으로 볼 수 없어요.

 
부처님과 불교라는 틀에서야 자유로워야 모두를 부처님으로 볼 수 있고,

그런 눈으로 세상을 볼 줄 알아야 진짜 불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초조 달마 대사부터 혜가, 승찬, 도신, 홍인,에 이르기까지 선종의 역대 조사들의 법문은 한결같이 

 '안심법문(安心法門)' 입니다.

너 스스로 자유로운 존재이니 집착만 버린다면 즉시 괴로움에서 벗어나 해탈을 맛볼 것이라는 내용이에요.
같은 뜻을 담은 남악 회양 스님과 석두 희천 스님의 재밌는 일화가 하나 전해 옵니다.


두 스님은 육조 혜능 스님 이후 최고로 잘 나가는 선지식들이었는데,

동시대를 살아가며 중국에 불법을 펴나갔어요.


두 스님은 서로의 그릇을 잘 알기에 서로 존경하고,

또 시자들을 통해 서신을 주고 받기도 했다고 합니다.
하루는 남악 회양 스님이 석두 희천 스님에게 시자를 보냈어요.
시자가 석두 희천 스님께 말하길
"스님, 저희 스님이 여쭤보라고 해서 왔습니다."라며

 

 "어떤 것이 해탈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석두 희천 스님이

 

"누가 그대를 속박했는가?"

라고 되물었다고 해요.
이에 다시 시자가

 

 "어떤 것이 정토입니까"

라고 물었는데,

이번에는


"누가 그대를 더럽혔는가?"

라고 반문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끝으로 시자가

 

 "어떤 것이 열반입니까?"

라고 묻자, 스님께서


"누가 너에게 생사를 주었느냐?"

 라고 답했어요.

 

얼마나 시원합니까?
아무도 너를 속박하거나 불편하게 한 적이 없는데 스스로 그러고 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도 공감이 가시죠?
다들 집에 가서 그러잖습니까?
남편, 자식과의 관계에서 괜히 조그마한 것 하나 마음에 담아두고
서로 불편해하며 말도 못하고

삐죽삐죽 하고 있잖아요.


선가에서는 숲도, 물도, 바람도 깨닫는다고 해요.
깨달음의 눈으로 보면 다 그렇게 보인다는 겁니다.
불편한 눈으로 보면 모든 것이 다 불편해 보이지만 평화로운 눈으로 보면

모든 것이 다 평화로운 법이죠.
내 스스로 괜히 마음속에 뭘 담아두고 불편해하고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는 거죠.
그러니까 근심과 걱정도 오늘 다 놓아버리고 가세요.


지금 여기에서 오늘까지의 집착과 분별과 시비와 미련이 놓아진다면,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이미 해탈한 존재입니다.

 

세상에 거의 모든 사람,
특히 실패한 사람들은 '언젠가 증후군(Someday Sickness)' 을 가지고 있다고 해요.

언젠가는 할 거야, 이것 때문에 다 실패하고 안 된다는 겁니다.
그저 맹목적인 낙관으로 삶을 허비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의 좌우명은 '어느 날' 이라고 해요.

하지만 그 '어느 날' 은 영원히 오지 않습니다.
그 날을 위해 자신을 갈고 닦지 않는다면 말이지요.
지금 만족하지 못하고 평화롭지 못하면 영원히 그렇지 못합니다.

그러니 지금 놓아버리세요. 지금 자유로워지세요.
현재는 과거의 필연적 산물이고 모든 미래의 필연적인 원인이 됩니다. 그

래서 현재가 가장 중요해요. 우리의 깨달음의 성취도, 평화스러움도 지금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내일이나 다음이 아니고 내 마음속에 내가 서 있는 삶의 현장

여기에 그대로 들어 있는 거예요.


지금 여기에 머물되 고정된 관념과 집착을 버리는 순간,

우리는 이미 해탈한 자유로운 존재이며 부처님의 품속에 들어 있는 존재입니다.

 

 

 

-승원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