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지구촌의 사상 ♡/♡ 서양철학

코페르니쿠스적 전향(철학적 사색의 혁명)

by 윈도아인~♡ 2012. 3. 17.

코페르니쿠스적 전향(철학적 사색의 혁명)

 

 

우리의 모든 인식이 재래에는 대상에 준거한다고 가정되어 왔다. 그러나 대상에 준거한다는 전제 아래서는 개념에 의해 대상에 관한 인식을 확장하게 하는 것을 선천적으로 만들어내려는 모든 기도는 무너지고 말았다. 이에 반하여 ‘대상은 우리의 인식에 준거해야 한다.’고 가정하였을 때 소기의 기도가 달성되어 대상이 우리에게 주어지기 전에 대상을 확장할 수 있다.

 

코페르니쿠스는 모든 별들이 관찰자의 주위를 돈다고 가정했을 때에 천체 운동의 설명이 성고 못한 후로, 이제야 관찰자를 돌도록 별들을 도리어 정지시켰을 때에, 설명이 더 잘 성공할 것이라는 기도를 하였다.

 

코페르니쿠스와 같은 방식의 기도가 대상의 직관에 관해서도 성공한다. 즉 우리의 직관작용이 대상의 성질에 준거하지 않고, 감관의 객체인 대상이 인간의 직관능력(작용)의 성질에 준거할 때에, 우리는 대상의 성질을 선천적으로 잘 알 가능성을 깨닫는다.

 

그런데 직관작용은 아직 인식이 아니다. 대상을 인식하자면 직관을 대상으로의 어떤 것에 관계를 짓게 하는 개념이 들어가야 하고, 이 개념에 의해 대상이 규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규정을 수행하는 개념에 관해 두 가지 가정을 할 수 있다. 개념이 대상에 준거한다는 가정과 대상이 개념에 준거한다는 가정이 즉 그것이다. 전자에서 대상에 관한 선천적 인식을 얻지 못함은 직관의 경우와 마찬가지이다.

 

후자에서 대상은 그것이 경험적으로 나에게 주어지기 전에, 우리 측의 선천적인 경험으로 드러나고, 그렇기에 대상은 개념과 일치하며, 대상에 관한 선천적 인식이 가능하게 된다. 사고방식이 변혁된 방법은 ‘우리 자신이 사물 중에 집어넣은 것만을 우리는 사물에 관해 선천적으로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실험적 방법이건 코페르니쿠스적 전향이건 간에 물론 대상의 존재가 예상되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칸트의 인식론을 흔히 구성주의(構成主義)라고 말하지만 이 구성주의는 대상의 존재를 단순히 이성(理性)에 의해 구성하고 산출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런 뜻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적지 않은 과오이다. 칸트는 ‘표상자체가 존재상의 대상을 산출하지 않는다.’고 명확하게 말했다. 단지 인식의 대상으로 존재하는 대상은 물자체가 아니라 ‘우리에 대한 대상’이라고 한 것이다.

 

그러면 우리에 대한 대상이란 어떤 대상을 말하는 것인가?

 

1. 그것은 첫째로 우리 안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외부에 있는 것이다. 우리의 외부에 있다고 해서 독존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에 대하여 있는 것이다.

 

2. 우리에 대한 대상이란, 우리 안에 있지 않으면서 동시에 우리에게 의식된 대상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외부에 있으면서 우리 안에 있는 대상이다. 우리에 대한 대상은 바깥과 안의 두 계기를 포함하고 있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향이란 표현을 Platon은 다음과 같이 음미했다.

 

----코페르니쿠스는 태양을 중심으로 하여 관찰자가 그 주위를 돈다고 했고, 칸트는 선험적 주관을 중심으로 하여 이것에 의해 인식이 구성된다고 했다. 그러므로 칸트의 인식론적 입장을 코페르니쿠스적 전향이라고 하는 말은 사실은 타당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전자가 천체의 외면상의 운동을 지구상 관찰자의 운동에 의해 설명했듯이, 후자도 실재의 외면상의 성질을 인식하는 자의 정신(심성)에 의해 설명한 점에서 양자 간에 유사한 점이 있다. 이런 관점에서 칸트의 입장을 코페르니쿠스적 전향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