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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촌의 사상 ♡/유·불·선·도·교

명상,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by 윈도아인~♡ 2012. 3. 17.

명상,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세상엔 명상이란 이름을 사용하는 수많은 것들이 있다. 그만큼 명상이 포괄적으로 쓰이고 있다는 증거이다.


우선 명상에 대한 정의부터 내려보도록 하자. 국어사전에서 명상(瞑想)을 찾아보면

“눈을 감고 차분히 가라앉은 마음으로 깊이 생각하는 것. 특히, 삶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가리킴”이라고 되어 있다.


좀더 명상적인 풀이라면  “일상의 번거로움과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 잠시 고요히 마음을 가라앉혀 내면의 평화를 얻는 것, 건강한 몸과 맑은 정신을 얻으려는 것, 판에 박히고 따분한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무언가 새롭고 신선한 내면의 세계를 찾아 떠나는 것, 삶의 매 순간에 늘 깨어 있으려는 것, ”


“내 몸의 기운을 다스리고 정신을 다스려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려는 것, 삶의 근본적인 문제인 생사 번뇌의 족쇄를 풀고 영원한 대자유인이 되려는 것, 덧없는 기쁨과 슬픔을 넘어 영원한 기쁨을 찾으려는 것, 마음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참 나를 찾는 것, 유한한 소아(小我)를 벗어나 무한한 우주와의 합일에 이르는 길,


그것이 명상이다.


명상은 어느 정도 몸에 붙을 때까진 쉽지 않을 수 있다. 노력이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 여태까지 우리는 ‘노력’만이 능사로 믿어 왔었다. 그것이 여기선 제거요소다. 억지로 하려 하면 오히려 작품이 망가지고 만다.


어린이 같은 유연함과 여성 같은 수용성이 필요하다. 마음을 강하게 하여 "억지로라도 마음을 고요하게 만들겠다."고 하면 결코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다. 그저 일어나는 것을 살피고 귀를 기울이고, 그것에 마음이 어떻게 작용을 일으키는가를 지켜보면 된다.


명상은 창문을 열어놓았을 때 들어오는 산들바람이다. 일부러 불러들이려 하면 안 된다. 노력을 쉬고 기다려야 한다. 그것을 무위(無爲)라 한다.


명상은 아름답다. 거기에는 기술이 없고, 따라서 권위도 없다. 명상을 하고자 한다면, 단지 스스로를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자신의 움직임, 걸음새, 먹는 모양, 자기의 말씨, 숨의 소리, 숨의 느낌, 들뜨는 마음과 위축되는 마음, 희망과 절망. 애착과 혐오, 사랑과 미움... 그런 것을 그냥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명상은 두뇌를 쉬게 한다. 그러므로 현대인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다. 온갖 활동과 경험을 담고 있는 그것을 풀어놓아 고요하게 두는 것으로 나를 만난다. 그것이 명상이다.


(출처/블로그 天心同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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