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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촌의 사상 ♡/유·불·선·도·교

[스크랩] 마음 보는 법 - 달마대사

by 윈도아인~♡ 2012. 12. 23.

혜가가 달마 대사에게 물었다.

"불도를 수행하려면 어떤 법을 닦아야 가장 요긴 하겠습니까?"

 

달마대사가 대답했다.

"오직 마음을 보는 한 법이 우주의 진리를 포괄하고 있으니 이 법이 가장 요긴하다."

 

"어째서 한법이 우주의 진리를 포괄했다고 합니까?"

 

"마음은 우주 진리의 근본이므로 모든 법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깨달으면 만 가지의 행을 다 갖추게 된다.

비유하자면 여기 큰나무가 있다고 하자, 그 나무에서 뻗은 가지나 꽃이나 열매는 모두 뿌리가 근본이다. 나무를 가꾸고자 하는 자는 뿌리를 복돋아 주어야 하며, 나무를 없애고자 하는 자는 뿌리를 뽑아야 할 것이다.

이와같이 수행하는 사람도 마음을 공부하면 공을 적게 들이고도 도를 이루기 쉽고, 마음을 모르고 공부하면 헛된 공만 들일 뿐이다.

그러므로 일체의 선과 악이 자신의 마음에서 일어난 것임을 알아야하며, 마음 밖에서 따로 도를 구하는 것은 잘못 된 것이다."

 

다시 혜가가 물었다.

"어떻게 마음을 보아야 마음을 깨달았다고 합니까?"

 

"육신은 본래 허무하여 참다운데가 없다. 또 자기 마음을 쓰는데에는 두가지 차별이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하나는 깨끗한 마음이요, 하나는 더러운 마음이다. 깨끗한 마음은 번뇌가 없는 부처의 마음이며, 더러운 마음은 번뇌에 덮인 어두운 마음이다. 이 두 마음은 인연을 빌어 볼래부터 함께 갖추어져 있지만, 깨끗한 마음은 더러움을 일으키지 않고, 더러운 마음은 깨끗함을 내지 못한다. 그러므로 깨끗한 마음은 착한 인연을 좋아하고 더러운 마음은 악업만을 생각한다.

만일 진리를 깨달아 더러운 것에 물들지 않은 사람이면 이를 성인이라 한다. 그는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 열반의 즐거움을 누릴 것이다.

만일 더러운 마음을 따라 악업을 짓는 사람이면 이를 범부라 한다. 그는 생사를 윤회하며, 갖가지의 괴로움을 받는다. 이는 더러운 마음으로 말미암아 진리의 참모습이 가려졌기 때문이다.

(십지경)에 "중생의 몸 가운데 금강처럼 굳은 불성이 있어 마치 천지를 비추는 해 처럼 뚜렷하게 밝지만 온갖 인연의 구름에 덮혀 마치 항아리 속의 불빛이 밖을 비추지 못하는 것과 같다."하였고,

또 (열반경)에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있으나 어둠에 덮여서 해탈하지 못한다."하였다.

불성은 깨달은 성품을 말한다. 스스로 깨쳐서, 그 깨친 지혜가 밝아 덮인 구름을 흩어 버리면 그것이 곧 해탈이다. 그러므로 모든 선행은 깨달음이 근본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깨달음이 근본이 되어 온갖 공덕의 나무가 무성하고 열반의 열매가 여물게 된다. 이와 같이 마음을 보는 것을 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삼독)

혜가가 물었다.

"참된 불성과 모든 공덕은 깨침이 근본이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면 어두운 마음과 온갖 악은 무엇으로 근본을 삼습니까?"

 

달마대사가 말했다.

"어두운 마음에는 팔만 사천의 번뇌와 정욕이 있어 강가의 모래 수만큼이나 한량 없는 악이 들어 있지만 그 근본은 삼독이다.

삼독이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인데 이 삼독 안에 모든 악이 갖추어져 있다.

비유하자면 큰 나무 뿌리는 하나지만 거기에서 뻗어나간 가지와 잎의 수를 셀 수 없듯이, 삼독 하나 하나의 뿌리마다 이렇듯 셀 수 없는 악의 가지가 뻗고 잎이 돋았으니 그 수는 무엇으로도 비교할 수 없다.

이처럼 삼독은 본체는 하나지만 우리 몸의 눈. 귀. 코. 혀. 피부. 뜻 등의 여섯 뿌리에 적용하면 곧바로 여섯가지 도적이 된다. 여섯가지 도적이란 눈, 귀, 코, 혀, 피부, 뜻에 부딪혀 오는 대상을 인식하는 것을 말한다.

이 여섯가지 인식이 육근을 통하여 드나들며 온갖 대상에 탐착심을 일으켜 악업을 짓기 때문에 진리를 가리게 된다. 이러한 연유로 여섯가지 도적이라 한 것이다.

중생은 이 삼독과 육적으로 인하여 몸과 마음이 어지러워지고 생사의 바다에 빠져 육도에 윤회하며 온갖 고통을 받는다.

이를테면 작은 샘의 물줄기가 끊이지 않고 흘러 강을 이루고 마침내 만경창파를 이루는 것과 같으나 어떤 사람이 작은 샘의 물줄기를 끊으면 모든 흐름이 다 쉬게 된다.

이와같이 해탈을 구하는 사람도 삼독을 일으켜 삼취정계를 이루고, 육적을 돌이켜 육바라밀을 이루면 저절로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날 것이다."

 

혜가가 물었다.

"삼독과 육적이 끝이 없는데 어떻게 마음만을 보고 그 한없는 괴로움을 벗을 수 있습니까?"

 

달마대사가 말했다.

"삼계에 태어날 업보는 오직 마음에서 지은 것이니, 만약 마음만 깨달으면 삼계에 있으면서 곧 삼계에서 벗어난다. 삼계라 하는 것은 곧 삼독이다.

탐내는 마음이 욕계가 되고, 성내는 마음이 색계가 되고, 어리석은 마음이 무색계가 된다. 이 삼독의 마음이 갖가지 악을 지어 업보를 이루고, 육도에 윤회하게 되니 이를 이것을 삼계라 한다.

또 삼독이 짓는 죄의 무겁고 가벼움에 따라 과보를 받는 것도 같지 않아 여섯 곳으로 나뉘게 되니 이것을 육도라한다. 그러므로 알아야 한다. 악업은 오로지 자기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니, 마음을 잘 단속하고 그릇되고 악한 것을 버리면 삼계와 육도를 윤회하는 괴로움은 저절로 소멸하여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이것을 일러 해탈이라 한다."

 

 

삼취정계(三聚淨戒)

혜가가 물었다.

"보살이 삼취정계를 가지고 육바라밀을 행해야 불도를 이룬다 하셨는데 지금 수행자가 오직 마음만 보고 계행(戒行)을 닦지 않는다면 어떻게 성불할 수 있습니까?"

 

달마대사가 말했다.

"삼취정계는 바로 삼독심을 다스리는 것이다. 독을 하나 없애면 무량한 선이 이루어진다.

취(聚)란 모았다는 뜻인데 삼취정계로 삼독을 다스리면 곧 세가지 한량없는 선을 이루게 된다.

바라밀이란 피안(彼岸)에 이른다는 뜻이니 육바라밀은 육근을 청정하게 하는 것이다.

육근이 청정하여 세상일에 물들지 않으면 즉시 번뇌에서 벗어나 피안에 이르게 되므로 육바라밀이라 한다."

 

혜가가 물었다.

"경에 말씀하시기를 '삼취정계라는 것은 일체의 악을 끊고, 일체의 선을 닦아 모든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다.' 하였는데 오직 삼독심을 없애는 말만 하시니 경에 말씀한 뜻과 어긋나지 않습니까"

 

달마대사가 말했다.

"경에 말한 것은 조금도 잘못됨이 없다. 부처님이 과거에 보살행을 닦을 때, 이 삼독을 물리치기 위해 세가지 원을 세웠는데 이것이 바로 삼취정계다.

탐욕의 독에 대해서는 계행(戒行)을 닦아 일체의 악을 닦아 일체의 악을 끊으셨고, 성내는 독에 대해서는 마음의 안정을 닦아 나갔으며, 어리석은 독에 대해서는 늘 지혜를 닦아 일체의 중생을 제도하셨다.

이와같이 계행과 마음의 안정과 지혜 등이 모두 청정한 법을 지녔기 때문에 삼독의 악업을 뛰어 넘어 불도를 이룬 것이다.

그러므로 삼독만 없애면 모든 악이 소멸하므로 끊었다 한 것이며, 삼취정계를 지니면 모든 착한 것이 갖춰지므로 닦는다 한 것이며, 악을 끊고 선을 닦으면 일체의 법이 성취되고 자기나 남이나 다 이롭게 되어 중생을 건지게 되므로 제도한다 한 것이다.

그러므로 계행을 닦아 나가는 것이 마음을 떠난 것이 아니다. 자기 마음이 청정하면 모든 중생이 청정하다.

그러므로 경에 이르기를 '자기 마음이 더러우면 모든 중생이 더럽고, 그 마음이 청정하면 중생도 청정하다.' 하였고, '불국토를 청정하게 하려면 먼저 그 마음을 청정하게 하라. 그 마음이 청정하면 곧 불국토도 청정해 지리라.' 하였다. 이렇듯 삼독심만 없애면 삼취정계는 저절로 이루워지는 것이다."

 

 

정념(正念)

혜가가 물었다.

"경에 이르기를 '지극한 마음으로 염불하면 서방정토(西方淨土)에 왕생한다.' 하였으니, 여기에 의지하여 성불해야 하는데 어째서 마음만 보아 해탈할 수 있습니까?"

 

달마대사가 말했다.

"염불이란 것은 염불을 말하는 것이다. 참뜻을 깨달으면 정(正)이되고, 깨닫지 못하면 사(邪)가 된다.

정념은 반드시 서방정토의 극락세계를 얻지만 사념은 피안에 이르지못한다.

불(佛)이란 몸과 마음을 살펴 악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고 염(念)이란 생각하는 것이니 계행을 가져 부지런히 정진하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이다. 이와같이 아는 것이 정념이다.

그러므로 염이란 마음에 있는 것이지 말에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물로 고기를 잡지만 고기를 잡고 나면 그물 생각은 잊어버리는 것과 같이 말에 의지하여 뜻을 알지만 뜻을 알고 나면 말을 잊어야 한다.

이와같이 이미 불보살의 이름을 부를 때에는 반드시 염불의 실체를 행해야 한다.

만약 염불한다 하면서 진실한 뜻을 모르고 입으로만 공연히 불보살의 이름만 외운다면 헛된 공만 들이는 것이니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외운다는 것과 생각한다는 것은 뜻이 다르다. 입으로 하는 것이 다르고, 마음으로 하는 것이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각은 마음으로 하는 것이니 깨달아 행하는 문임을 알아야 하며, 외우는 것은 입으로 하는 것이니 곧 음성의 모양에 따르는 것이다. 그것은 모양에 집착하여 복을 구하는 것이니 잘못된 짓이다.

그러므로 경에 이르기를 '상(相)이라는 것은 다 허망한 것이다. 형상으로 나를 보거나 음성으로 나를 찾는다면 이런 사람은 도를 행하는 것이니 여래(如來)를 볼 수 없다.' 하였다. 이렇듯 사물이나 형체에서 여래를 찾는 것은 진실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옛적부터 성현들이 닦으신 공덕은 마음 밖을 이야기 한 것이 아니라 바로 마음을 강조하신 것이다.

마음은 모든 성현의 근본인 동시에 온갖 악의 주인이다. 열반의 즐거움도 자기 마음에서 오는 것이요, 삼계를 윤회하는 고통도 역시 마음에서 일어난다. 마음은 세간을 벗어나는 문이고 해탈로 가는 나루터이다. 문을 알면 벗어나지 못할까 하는 근심이 없고, 나루터를 알면 피안에 이르지 못할 것을 어찌 걱정하겠는가?

가만히 살펴보니 요즘 사람들은 아는 것이 얕아 형상을 세우는 것만이 공덕이 되는 줄로 안다.

덧없는 세간의 유위법(有爲法)에만 집착하고, 형상을 떠난 진여의 성품을 말하면 앞이 캄캄하다.

뿐만 아니라 세상의 조그마한 즐거움에 탐닉하여 곧 닥쳐올 큰 고통을 깨닫지 못한다.

이와같이 공부한다면 헛되이 스스로를 피로하게만 할 뿐 아무 이익이 없다.

다만 마음을 잘 거두어 안으로 돌이켜 깨치면, 보는 것이 항상 밝아 삼독심이 사라지고 육적이 드나드는 문이 닫혀서 침범하지 못한다.

이렇게 되면 한량없는 공덕과 갖가지의 장엄과 무량한 법문을 낱낱이 성취하여 순식간에 범부에서 벗어나 성현의 경지에 오르게 될 것이다.

도를 깨치는 것은 한 순간에 있는데 어찌 머리가 희도록 기다릴 것인가? 깊고 오묘한 참된 법문을 어찌 갖추어 다 말할 수 있겠는가?

여기서는 다만 마음 보는 것만을 간략히 말하여 나머지 세밀한 부분을 살피게 한 것이다 "

 

 

 

 

달마 [達磨, Bodhidharma, ?~528 ?]  
  
요약
중국 남북조시대에 중국 선종(禪宗)을 창시한 인물이다. 당시의 불교와는 정반대인 좌선을 통하여 사상을 실천하는 새로운 불교를 강조했다. 
 
본문

중국 선종(禪宗)의 창시자. 범어(梵語)로는 보디다르마이며 보리달마(菩提達磨)로 음사(音寫)하는데, 달마는 그 약칭이다. 남인도(일설에는 페르시아) 향지국(香至國)의 셋째 왕자로, 후에 대승불교의 승려가 되어 선(禪)에 통달하였다. 520년경 중국에 들어와 북위(北魏)의 뤄양[洛陽]에 이르러 동쪽의 쑹산[嵩山] 소림사(少林寺)에서 9년간 면벽좌선(面壁坐禪)하고 나서, 사람의 마음은 본래 청정하다는 이(理)를 깨달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이 선법(禪法)을 제자 혜가(慧可)에게 전수하였다.

그의 전기는 분명하지 않으나, 최근 둔황[敦煌]에서 출토된 자료에 따르면, 그의 근본사상인 ‘이입사행(二入四行)’을 설교한 사실이 밝혀졌는데, 오늘날의 학계의 정설로는, 달마는 《사권능가경(四卷楞伽經)》을 중시하고 이입(二入)과 사행(四行)의 가르침을 설파하여 당시의 가람불교나 강설불교(講說佛敎)와는 정반대인 좌선을 통하여 그 사상을 실천하는 새로운 불교를 강조한 사람이다.
[출처] 달마 [達磨, Bodhidharma ] | 네이버 백과사전


 

출처 : 행복한 삶의 방식
글쓴이 : 아름다운나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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